언어학 로망

2025-03-31 0 By rainrose2718

최근 복수전공의 얼개를 조금이나마 구체화했다. 무슨 일 학년이 벌써 복수전공 생각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다만, 최근 중앙도서관 통로에서 개최된 인문계열 전공박람회에 다녀온 후 결정한 것이다.

나는 언어학을 복수전공하고 싶다. 본래는 컴퓨터과학(공학), 철학, 수학 셋 중 하나에서 고민하였다.

컴퓨터과학은 본래부터 관심있던 학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겨울즈음부터 C언어를 시작으로 Java, C#, JS, Python 등 프로그래밍 언어를 습득했고, 영어보다 익숙한(내 영어실력은 기초영어이다) 제2외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카카오톡 봇을 만들고 이루다 사건 등을 바라보며, ChatGPT가 등장하기 전부터 인공지능이나 NLP 따위에 관심이 있었다. 찰스 펫졸드의 <CODE: 코드>에서 컴퓨터의 기본 단위인 논리게이트와 가산기의 개념을 접하고, 계산가능성이나 튜링머신 등을 다루는 기초 컴퓨터과학을 깊게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또한 지구환경과학부를 주전공으로, 컴퓨터공학부를 복수전공으로 하는 같은 고교 출신인 O 선배의 영향으로 인해, 복수전공 대상으로는 가장 친숙한 학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높은 경쟁률로 인한 진입 난이도 및 학업 난이도 등으로 인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철학은 재작년부터 관심을 가지며 내 삶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 학문이다.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던 중학생 시기까지는 오로지 과학만이 세상의 작동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러가지 모순과 그로 인한 (정신적)고통으로 침체기를 겪던 고등학생 시기부터 도리어 철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1학년 때는 절대적인 도덕 규범을 해체하는 니체를 읽고(원전은 아니고 선집이나 교양서적을 위주로 읽었다) 위안을 얻는가 하면, 2학년 때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내가 만든 키치’에 연연하는 나의 모습을 비추어보고 스스로를 의심하며 그 속박으로부터 해방을 얻었다. 나의 필요가 만들어낸 여러 개념들과 사유의 흐름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타인이 이미 알고 있는 과거의 철학자들을 인용해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고, 철학과 복수전공을 조금이나마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니체의 사상의 변화를 일대기 순으로 서술해보아라’ 하는 식의 지식적인 학습은, 나의 이야기를 주인공으로 하여 의심과 질문으로서 나아가는, 내가 추구하는 철학의 방향과는 다를 것 같아, 일단은 보류 상태에 두었었다.

수학은 내가 가진 ‘근본적인 것을 추구하는’ 일종의 강박으로 인해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한 학문이다. 사회나 자연 따위의 현실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한 연역만으로 이루어진 형식과학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최근 해석학을 잠깐 들추어 보았을 때나 대학에서 미적분학을 배울 때, 가장 기본적인 정의와 공리에서 여러 가지 정리들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다. 또한 결과를 먼저 직관적으로 추론하고, 증명 과정을 만들어나가며 대부분의 수학적 발견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더욱 흥미를 자극했다. 대학수학을 예습할 때는 무조건 수학기초론(집합론, 논리학 등)부터 해야 한다는 과거의 나의 생각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Merope님과의 만남에서 전해들은 위상수학에 관한 내용도 한몫했다. 위상수학이란 그저 ‘컵과 빨대가 동일하다’고 주장하는 학문인 줄 알았지만, 실은 거리를 잘 정의하는 방법에 관한 학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부분에서는 나의 수학 실력에 대한 의심과 수학에 관한 트라우마로 인해 학업 중 불안을 겪을 가능성이 높고, 그리 높은 성적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인해, 선뜻 결정하기는 어려웠다.

언어학은 이들 세 학문을 통합한, 내가 진정으로 관심있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듯한 매력있는 학문으로 다가왔다. 언어의 논리적 특성(인간은 어떻게 논리학 학습 없이도 선천적으로 논리적 추론이 가능한가?)을 다루는 것부터 문법의 구조(보편적인 문법은 있는가?), 역사비교언어학(기본 어휘의 공통점을 바탕으로 같은 조상언어에서 진화했다고 추론하는 것은 마치 컴퓨터로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계통수를 그리는 과정 같다) 등에서 컴퓨터과학적 요소를 발견하였다. 특히 자연어처리를 직접적으로 다루는 최근에는 더욱 컴퓨터과학과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비트겐슈타인, 소쉬르, 프레게 등 ‘언어철학’자가 있는 것만 보아도 언어와 철학은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니, 애초에 철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은 결국 언어로 쓰여지는 것이므로 철학을 포함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언어학에서는 ‘의미란 무엇인가?’, ‘앎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욱 잘 맞을 것이다. 그리고 수학을 추구하였던 이유인 ‘근본성에 대한 갈망’도 언어학이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으리라 예상한다.

그러나 언어학에 관심을 가진 가장 원초적이고도 시초적인 계기는
초등학교 6학년의 어느 가을날 꾸었던 한 편의 꿈이다.

나는 다큐멘터리 작가나 언론사의 취재 기자 따위가 되어 아프리카의 한 오지 마을에 있었다. 완전한 사막은 아닌 건조한 지역에 위치하는 듯한 그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반지하 형태의 토담집을 짓고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어떤 부부의 집에 들어간다. 창문이 없어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내부는 어두침침하고 스산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방의 구분이 없이 그저 하나의 방이었던 집 안에서 나는 아내와 남편을 마주보고 이들을 촬영하고 인터뷰 내용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만의 매우 독특한 언어를 사용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팔천여개의 언어와는 다르게 목소리를 사용하지 않는 언어였다. 그렇다고 수화같이 손동작으로 의미를 표현하는 언어도 아니었다. 신체 부위를 지목하여 의미를 표현하는 언어였다. 예를 들어 눈동자를 지목하면 숫자 1, 오른발의 넷째와 셋째 발가락 사이를 지목하면 숫자 83, 코딱지를 파서 배꼽에 붙이면 ‘나는 밥을 먹는다’라는 의미를 표현할 수 있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언어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고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힘겹게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아내는 그나마 배운 음성 언어로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남편은 음성 언어를 할 수 없었고, 오로지 전통 언어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코딱지가 없어 ‘밥 먹고 싶다’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해 각 신체 부위는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고, 그의 언어는 점차 표현력을 상실하고 있었다. 그는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 듯 하였다. 입으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그저 갈 곳 없는 손가락만이 공중을 휘젓다가, 아내의 콧구멍을 후벼 코딱지를 빌려서 겨우 ‘밥 먹고 싶다’를 표현하였을 뿐이었다.

나는 아마 이 장면 즈음 너무 놀란 나머지 잠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낮잠이었나 밤잠이었나는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낮잠이었던 것 같다. 일어났을 때 햇빛이 방안을 백색으로 비추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꿈 이후로 ‘언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일이 많았다. 언어는 정말 음성과 문자로만 표현되어야 하는가? 신체부위를 지목하는 언어가 정말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란 법이 있는가?

나는 이후 세상의 다양한 언어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접해 왔다. 아프리카의 ‘똑쿵’ 족에서는 우리가 시계소리를 표현할 때 내는 ‘똑딱똑딱’ 따위의 혀를 차는 소리가 그들의 언어에서 사용되는 음가 중 하나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럽의 어느 오지 산간 지대의 마을에서는 그들끼리 통하는 휘파람 언어가 있다고 한다. 파푸아뉴기니의 어떤 부족은 3 이상의 수를 구분하지 못하며 모두 ‘많다’ 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왼쪽 오른쪽이라는 개념 대신 동서남북의 절대적인 방위 개념만을 사용하는 언어도 있다고 한다.

‘언어란 무엇인가?’, ‘왜 사람만이 언어를 사용하는가?’, ‘언어들은 어째서 이토록 다른가?’, ‘그러나 어째서 공통적인 문법 요소가 존재하는가?’, ‘과연 언어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는 무엇인가?’, ‘인류조어가 존재하는가?’, ‘언어는 동시다발적으로 진화했는가, 한 뿌리에서 비롯되었는가?’

지금까지도 나를 설레게 하고 흥분시키는 질문들이다. 나는 역시 언어학과를 복수전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