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부조리와 선형 독립

2025-04-30 0 By rainrose2718

인간을 하나의 벡터라고 가정하면 그 인간들로 이루어진 우리네 세계는 선형독립이다. 하나의 인간은 이 세계와, 또는 다른 인간과 합일을 이루고 싶어한다. 즉, 부조리를 소멸시키고 구원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선형 독립인 우리들은 아무리 상수배를 거듭해도 누구와도 합일을 이루지 못한다. 누군가와 합일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0을 곱하여 영벡터가 되는 것, 곧 죽는 것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조건은 절댓값이 0보다 큰 벡터이기 때문에 그는 그 즉시 이 세계에 속하지 아니한 존재가 되고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선형독립의 상태를 유지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코사인 유사도가 1에 가까운 인간과 함께하며 1보다 큰 상수배를 거듭해 점점 멀어지거나 1보다 작은 상수배를 거듭해 점점 가까워지다가 영벡터로 소멸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곧 언어이다. ChatGPT 4의 수조 개에 달하는 매개변수 개수가 말해주듯 언어는 매우 높은 차원의 벡터공간이다. 단어, 문장, 긴 글, 어떤 인간의 인생 모두 이 벡터 공간의 어느 점 하나에 대응될 수 있지만 그들 중 선형종속인 벡터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선형종속인 벡터가 존재할 확률은 우리가 벽에 전속력으로 충돌했을 때 몸의 원자가 동시에 양자터널링 효과를 일으켜 벽을 통과할 확률에 버금갈 정도로 극악할 것이다.

두 단어, 두 문장, 두 저서, 두 인간의 코사인 유사도가 1에 가까울 수는 있겠지만 완벽히 1일 수는 없다. 부조리는 그 간극에서 탄생한다. 그러나 그 사실이 우리 세계의 광막한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만들어낸다. 선형 종속인 두 벡터의 선형결합은 오로지 직선에 불과할 뿐이지만 선형 독립인 두 벡터의 선형결합은 평면으로 훨씬 넓은 범위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선형 독립인 n개의 벡터의 선형결합은 n차원 공간의 어느 곳이든지 도달할 수 있다. 선형 독립인 우리들은 서로 더해지고 빼어지고 때로는 외적되어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를 새로이 열어제낀다.

결국, 부조리는 우리 세계를 지탱하는 근원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