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죽는다는 것

2025-10-23 0 By rainrose2718

이 글은 2025년 2학기 서울대학교 강의 ‘대학글쓰기 1’ 핵심어 정의 과제의 일환으로 작성한 것임을 밝힙니다

 언어학자들은 지구상에 약 6,000여개의 언어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1. 그러나 오늘날, 이들 중 수많은 언어가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다.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와 같은 대규모 언어 몇 가지의 화자가 지구상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외의 수많은 언어들은 적게는 한두 명에서 많게는 몇만 명까지의 매우 적은 화자만을 보유하고 있다. 단적으로, 세계 인구의 96%가 세계 언어의 4%를 사용하며, 세계 인구의 4%만이 나머지 96%의 언어 중 한두 가지를 사용한다.2 이러한 경향은 최근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교통 및 통신수단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더욱 간편해지면서, 대규모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사회, 경제적으로 유리해졌기 때문이다. 새로 태어나는 세대들은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던 부모의 언어를 물려받기보다는 영어나 중국어 등 공용어로 널리 쓰이는 언어에 더욱 익숙해진다. 결국 소규모 언어의 화자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대규모 언어의 화자 수는 더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언어가 죽는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대부분의 언어학자들은 ‘그 언어의 마지막 모국어 화자가 사망하는 시점’을 언어가 죽는 시점으로 여긴다.3 이 정의에 따르면, 수많은 사람들이 학술 활동이나 고문헌 해독을 위해 외국어로서 배우고 있는 한문,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와 같은 언어들도 모국어 화자가 현존하지 않기 때문에 죽은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언어들이 처한 상황이, 모국어 화자가 현존하지만 그마저도 70대 이상의 노인들뿐이고, 자식들과 손자들은 그 언어의 표현 몇 가지만 알 뿐 실생활에서는 공용어로 대화하는, 그런 ‘소멸 위기 언어’보다 ‘죽음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언어의 죽음이라는 표현은 곧 언어가 생명체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함의한다. ‘죽음’이라는 명사의 사전적인 의미는 “생명체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4이다. 조금 더 자세히 정의하면, 생명체의 죽음은 신체의 각 부분의 유기적인 연결이 사라지고 구성 물질이 아무런 기능이 없는 ‘물질 그 자체’로 돌아가는 것이다. 소쉬르가 말한 대로, 언어는 인간의 개인적인 능력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적 체계이기도 하다. 생명체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은 후자이다. 독립적으로 생명 활동을 하는 세포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생명체를 이루는 것처럼, 독립적인 언어 능력이 있는 개인들이 상호작용하며여 하나의 언어 체계를 이룬다. 이처럼 언어의 죽음도 생명체의 죽음에 비추어 이해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언어가 죽는 시점이란 곧, 모국어 화자들이 자신의 언어를 비가역적으로 포기하는 시점, 자신의 언어에 더이상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고 아이들이 지배적인 언어를 우선적으로 습득하기 원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심장이 멈추고 뇌 기능이 정지하여 의학적으로 ‘사망’ 판정을 받는 그 순간에도, 피부나 장기의 상피세포 하나 정도는 몇 분간 살아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개의 세포가 살아있다고 해서 그런 사람을 살아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신선한 산소와 영양분을 배달해 줄 혈액이 더이상 도달하지 않는 세포들에게 남은 종착지는 오로지 죽음 뿐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가장 결정적인 성질은 비가역성이다. 다시는 살아 있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것, 그것이 곧 죽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심장이 멈춘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골든 타임’이 지나기 전, 심폐 소생술을 시행하여 인공적으로나마 혈액을 온몸에 공급하며 개별 세포들이 죽지 않도록 시간을 벌고, 적절한 의료적 조치를 취하여 심장을 다시 박동하게 하면, 죽음의 위기에서 구출하여 생명을 이어나가도록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죽어가는 언어도 골든 타임이 지나기 전,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면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문법서 및 사전 편찬, 구술 자료들의 채록 및 전사와 같은 언어학자들의 학술적 노력과, 공교육 및 공무원 시험 등에서 필수 과목으로 포함하며, 사회적인 불이익을 최소화하는 제도적 노력, 그리고 자신의 언어에 자부심을 가지고 자녀들과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에게 물려주려고 하는 모국어 화자 자신들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히브리어5와 같이 극적으로 ‘부활’하지는 않더라도, 그 소중한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하나? 심장이 총알에 뚫렸을 때? 아니.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아니. 맹독 버섯 스프를 마셨을 때? 아니야… 사람들에게 잊혀졌을 때다…!!!”

만화 «원피스» 16권에 등장하는 ‘닥터 히루루크’의 대사로, 사람이 죽는 것은 다름아닌 다른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라고 말하고 있다. 언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언어의 모국어 화자가 아직 살아 있을지라도, 그 언어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그 언어를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순간, 그 언어는 완전한 죽음을 맞는다. 반대로 생각하면, 언어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즉 그 언어의 죽음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1. 데이비드 크리스털 저, 권루시안 역, «언어의 죽음», 서울: 이론과 실천, 2005. p. 18
  2. Ibid. p. 34
  3. Ibid. p. 15
  4. 표준국어대사전, “죽음”, 국립국어원”
  5. 기원후 2세기 경 아람어와 그리스어에 밀려 사멸한 이후, 유대인들의 전례와 교역 등을 위한 언어로 제한적으로 사용되다가, 19세기 말 언어학자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1857-1922)에 의해 부활하였다. 현재는 이스라엘의 공용어로 지정되었으며, 약 500만명에 달하는 모국어 화자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