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현상과 글쓰기

2025-11-08 0 By rainrose2718

글쓰기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자. 글을 쓴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에 더 가까운가, 그 과정에서 생각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더 가까운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삶을 살아가며 느낀 감각과 경험한 사건, 습득한 지식의 희미한 총체를 잠상핵으로 하여, 문자 언어라는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정교화하고 구체화하는 현상 과정이다.

글쓰기를 사진 현상에 비유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노광이 있어야 사진이 나오듯이 삶이 있고 경험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 고이 간직한 잠상들을, 만년필 잉크라는 현상액으로 몇 시간에 걸쳐 끼적거리면, 마침내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물론 이 상태로도 고정은 되므로 사라질 염려는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려면, 퇴고와 출판이라는 인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