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일렁일렁
갈수록 사람들이 글에 대해서 느끼는 무게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것을 나 자신에게서 먼저 느낀다.
스마트폰을 압수당한 채 한적한 논밭 한가운데서 꼬박 이 주를 보내던 고등학생 시기, 자극은 적었지만 나의 정신은 의미로 충만했다. 매일 읽고, 공부하고, 생각하며 느끼는 감동과 고통, 떨림이 당면한 삶으로서, 현실로서 다가왔다. O 선배의 글은 한 자 한 자가 나의 마음을 울리고 감탄을 자아내며, 삶의 태도에 준거로서 큰 영향을 주었다. 나는 그 선배처럼 서울대학교에 진학하여—매일 밤 공부를 하고, 철학적 사유를 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며, 누군가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만한 환경적 조건이 갖추어진 지금의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서울대학교의 학적도, 만년필도, 글을 투고할 개인 블로그도 갖추어져 있는 나는 지금, 매일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매일 아침 늦게 일어나 씻지도 않고 지각으로 강의실에 도착하여 꾸벅꾸벅 졸다가, 동아리 방에 가서 잡담을 몇 시간 늘어놓고, 밤늦게 기숙사에 돌아와 공부를 하기는커녕 휴대폰만 하루 온종일 만지작거리다가 늦게 잠들어버리는, 그런 생활을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글쓰기와 공부하기는 어디로 가버렸는가? 철학 서적 읽기는? 문학 읽기, 창작하기, 기타 연습하기는? 나는 왜 하루 온종일 나의 인생을 갉아먹지 못해 안달이 났던 것일까?
실존적인 고통을 자극으로, 새로운 자극으로 덮어버리면 그만인 세상이다. 서울엔 수많은 지인들과 친구들과 잠재적 친구들이 있다. 누군가와 관계가 틀어져서 외롭거든,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을 불러내어 외로움을 달래면 그만이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과제를 미루고 있다는 데에서 기인하는 걱정과 불안은, 블로그 새로고침과 SNS 접속으로 잊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노트북 안의 세계로 빠져들어 새벽 두시 반까지 허우적대다가 졸음이 밀려오거든 노트북을 들고 바로 옆의 침대에 누워 짧은 잠을, 안일한 잠을, 청하면 그만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글을, 수십 시간을 들여 자신의 치부까지 처절하게 드러낸 그런 글을 읽어도, 감흥이 오지 않는다. 평시에 읽는 수십 수백 편의 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스티브잡스의 1984년 매킨토시 발표와 연관지으며 감동을 받고 그리도 열렬히 좋아하던 밥 딜런의 음악이나, 슈베르트의 가곡집 <Die Schöne Müllerin> 따위를 들어도 마찬가지이다. 최인훈의 소설을 읽어도,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어도, 소수 언어의 소멸에 대한 보고서가 담긴 책을 읽어도, …
나는 자극의 범람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방향타 없는 나의 연약한 기반 뗏목 위에 위태로이 발을 디딘 채 선인들의 수많은 마스터피스 바다 위에서 일렁일렁. 일렁일렁. 일렁일렁.
너무나 공감되는 글이네요.
오히려 적당한 억압을 받던 시기에 더욱더 몰입하며 자유로운 사고를 했던것 같네요.
핸드폰에 인터넷 브라우저, 블로그, 인스타, 카톡을 다 삭제했던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가장 ‘나의 의지로 내 삶을 살아간다.’라는 생각이 들었던것 같음.
댓글 고맙습니다. 이러한 시기일 수록, 제 글을 읽고 공감하며 진심을 담아 남겨준 댓글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적절한 억압과 목표의식은 오히려 정신적 성장과 성취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목표의식을 맹목적으로나마 달성하기 위해서 작은 목표들을 세우고 무언가에 몰입하죠.
대학 입학 이후에는 고등학생 때 가졌던 ‘대입’이라는 강력한 목표의식과 함께,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칙이나 치러야 하는 시험 같은 것이 사라지게 됩니다. 대신 자신이 원한다면 ‘하지 않음’을 선택할 수 있는 대학 강의 수강이나 동아리 활동, 아르바이트 등등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지요.
고등학교에서는 ‘과연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에서 유래한 불안감이 침체기의 원인을 차지했다면, 대학에서는 ‘과연 내가 진정 성장하고 있는게 맞는가?’, ‘과연 내가 힘들게 헤쳐나가는 이 스케쥴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의 실존적 질문들을 당면하는 것이 침체기나 무기력증의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두 번째의 침체기를 최근에 경험하였고, 이 글로써 녹여낸 것이지요.
Writu님도 곧 대학에 진학하시는 만큼, 고등학교 때와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보시고 관련한 책들을 여럿 읽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좋은 밤 되세요 🙂
글은 간극 위에서 태어납니다. 실존의 문제 속으로 침잠하지 않고서 글은 써지지 않는 법이죠. 어느 날 의미를 찾았는가 싶더라도 어느 날 다시 스러지는 반복 속에서 사유는 고통스럽게 전진합니다.
대학 글쓰기에 등장하는 고 김윤식 선생의 문장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