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턱에서

2025-11-17 0 By rainrose2718

서울대입구에서 Y, B, O 선배를 오랜만에 만났다. 어두침침한 스페인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친 후 가려고 했던 ‘세상과 연애하기’가 만석인 관계로, 카페 ‘커피빈’을 차선책으로 택해서 방문했다. 카페에서는 줄곧 재즈풍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왔다. 나는 며칠 전부터 찾아헤매던 그 멜로디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Sleigh Ride. 매년 이맘때 즈음 길거리나 영화 따위에서 듣고서 아아 좋다 하고 수십번을 찾아 듣다가, 날씨가 풀리면 잊고 있다가 또다시 겨울이 되면 다시금 제목을 찾아보고 하던 그런 노래였다. 아무튼 O 선배 덕에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이마트송>의 원곡인 <Happy Talk>을 부른 가수와 같은 Ella Fitzgerald라는 것을 새로 알게 되었다. —나는 피츠제럴드 하면 <위대한 개츠비>의 스콧 피츠제럴드만을 생각했다. 재즈 가수 피츠제럴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헤어지고 나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버스 5511을 타고서도 그 음악을 연속으로 다섯 번 정도 들었다. 끝없는 밤을 뚫고 언덕을 힘겹게 올라온 버스는 곧 기숙사 삼거리에 도착했고, 나는 어둠 속에서도 그 음악을 들으며, 멜로디에 고개를 살며시 까닥까닥이며 기숙사 쪽으로 걸어내려왔다. 그때 신관기숙사 앞의 게시판에 걸린 대자보를 발견했다. 내 옆의 아무 사람도 그 대자보를 주목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키워드 하나하나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다.

오래된 대학 하나를 소개한다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한때는 삼천 개가 넘는 언어로 강의를 했지만, 점점 공용어의 현실적인 이점들에 따라 그 쪽으로 옮겨가며 소수어 강의가 개설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수요자가 쉰 명이 족히 넘는 언어의 강의가 개설되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 언어를 지키고자 하는 교수가 무학점 강의를 열었을 때, 삼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강하였음에도 개설하지 않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라고 이야기했다. 서울대의 ‘맑스 경제학’ 폐강 사태를 소수언어 소멸에 빗대어 날카롭게 꼬집은 글이었다.

나는 반가움과 함께 부끄러움이라는 묘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겨울의 초입,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스미는 그 밤에 낙엽 쌓인 게시판 앞에 멍하니 서서 말이다. 먼저, 나의 대학글쓰기 보고서의 주제이자 계획중인 소설의 주제인, ‘소수언어’를 다룬다는 것이 반가웠다. 유려한 문체로, ‘학문’을 ‘언어’에 빗대어 그 억압과 냉대를 묘사한 것, 그리고 내가 다루고자 했었던 ‘주류와 주변부 사이의 간극’, 즉 ‘Majority와 Minority의 간극’을 드러낸 것. 그것이 그저 반가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했다. 나는 맑스경제학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그것이 복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진심으로 그 학문을 공부해본 적이 있던가? 여름 계절학기 기간 밴드 합주를 핑계로, 삼천 명이 신청했다던 그 0학점 강의를 신청하지도 않았을 따름이다. 소수언어는 어떠한가, 인칭대명사 체계를 외우고 있는 소수언어가 단 하나라도 있던가? 그냥 맑스경제학 폐강에 반대한다고 외치는 것이, 소수언어를 보호하자고 외치는 것이, 당위적으로 옳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멋지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저 동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런 이야기를—식당에서 밤마다 탈바꿈하는 919동 자습실에서 하라는 대학글쓰기 과제는 안 하고 적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