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의 단편들 2

2025-12-18 0 By rainrose2718

나는 왜 점차 ‘바보’가 되어가는가? 아무리 많은 양의 Coffee를 섭취한다 해도 나아지지 않는, 청명해지지 않는, 흐린 나의 정신, 나는 그저, 다음 주 화요일의 Y와의 기차여행만을 기다리고, 헤롱헤롱, 어질어질, 부유한다.

흐리멍덩하다. 어딘가 날카로운 정신으로 집중할 곳이 있으면 좋으련만!
(Attention is all I need)
— 2025. 12. 08. —


Nur die deutsche Prüfung bleibt mir bis letzten Montag. Jetzt sitze ich auf dem Stuhl des 75. Bäumes.
(다음주 월요일의 독일어 시험만이 남아있다. 나는 지금 75동(농생대 융합관)의 의자에 앉아있다.)
Kann ich etwas lernen, wärend ich an der Wohnung oder dem Clubzimmer bin?
(내가 기숙사나 동아리방에 머무르는 동안 무언가를 공부할 수 있을까?)
Ich kann nicht antworten, denn will ich zu ‘Larchmont’ am Abend gehen und dort die deutsche Grammatik lernen.
(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그래서 저녁에 ‘카페 라치몬트’에 가서 독일어 문법을 공부할 것이다.)
Ich habe vor, einen Brief an Marie zu schreiben.
(독일어 랩수업 선생님께 편지를 쓰려고 계획하고 있다.)

The Locusts on the wheat field, waving.
일렁이는 밀밭 위의 메뚜기떼

곤충과 식물과의 경쟁을, 인간과 자연 또는 개인과 사회와의 경쟁에 비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식물은 곤충에게 먹히지 않으려고 방어하지만, 한편으로는 번식을 위해 수분 곤충과 협력해야 한다. 곤충은 식물에게 독소로 방어당하지만, 한 식물을 섭취하는 것에 특화된 곤충은 오히려 그 독소를 축적하여 포식자에 대한 방어능력을 갖출 수 있다.1
‘인간 전문가’도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외국어 학습에서의 ‘연습문제’에 관해.
실제 소통에서는 문법 한두개 정도 틀리는 것은 용인될 때가 많지만, 연습문제는 규범문법을 정확히 지키는 것을 목표로 풀어야 할 때가 많다. ‘연습문제 풀기’는 필연적인가? 언어의 본질은 퍼즐놀이보다는 의사소통의 수단에 가까울 듯 하지만, 대화를 나눌 상대 없는 외로운 외국어 학습자의 입장에서는, 역시 연습문제 풀기가 필연적인 것 같다.
… 그러나 나는 글쓰기를 하고싶다!

독일어 공부 일정
✓ ‘Herzlich Willkommen!’ 연습문제 해결
✓ ‘Deutsche Grammatik’ 연습문제 해결
✓ 새로운 문법 필기 정리
✓ 본문 듣고 따라하기
✗ ‘Demian’ 한 페이지 잡아서 독해
✗ ‘Der Zahlenteufel2‘ 독해
✗ 대화문 따라하기
남은 공부 시간 : 총 16시간.
— 2025. 12. 11. —

행복한 성탄절!3

서울대 합격 발표를 본 지 1년째이다. 응원하던 후배인 P군은 아쉽게도 항공우주공학과에 불합격한 듯 하고—오늘 보니 카이스트에 붙었다고 해서 다행이다.— 거창고의 P와 대성고의 R도 1지망 대학에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소식4을 들은지라, 그리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독일어 LAB수업—어제 작성한 편지를 전해 드렸다.—을 마지막으로, 다음주 월요일의 독일어 시험만을 남겨 놓고, 2학기가 종강했다. (언컴 과제와 대글 보고서도 포함이다!) 언젠가 2학기 후기글을 써야 할 텐데, ‘대학입시는 종교다’ 라는 글을 완성해야 할 텐데—하는 생각을 하며, 지하철 2호선에서 을지로입구역을 지나 슈텔로 사람들을 만나러 홍대입구역으로 가고 있다.

이제 할 것은, Deutsch Lernen(독일어 공부), Die Aufgaben Schreiben(과제들 하기), Einen Brief für [ ] schreiben(편지 쓰기), 과외 자료 초안 만들기 등… 나에게는 두 달간의 겨울방학이 눈앞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고, 그 다음에 올 2학년 1학기가 먼 발치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다.

멋진 인생이다, 재미있는 인생이다.
— 2025. 12. 12. —

‘중요한 것은 변한다.’ Y의 글에서, 가장 인상깊은 탐구 주제로 건져올린 명제이다. 인간은 키치 없이는 살 수 없지만, 그 키치가 전 생애에 걸쳐 불변하거나 유일한 것은 아니다. ‘키치가 존재한다’라는 상태 자체(존재성)은 불변하지만, 그 키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유일한지(유일성)는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따라서 소쉬르가 언어를 공시적, 통시적 관점으로 나누어 바라보며 언어학을 이론언어학과 통시언어학의 두 분야로 쪼갠 것처럼, 우리도 우리네 스스로의 인생에서 ‘현재 무엇을 중히 여기는지’와 ‘무엇을 중히 여겨왔고 어떤 경로로 변천하였는지’를 분리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겠다.

후자는 시간을 x축으로, 중요도를 y축으로 하는 스펙트로그램의 형태일 테다. 또한 그 분석 대상을 ‘인생의 지향점’, ‘관심사’, ‘가치관’ 등 다양한 요소로 둘 수 있겠지. 온전히 자신의 기억에만 의지하여 탐구하거나, 과거 일기나 SNS 기록, 주변인의 증언 등을 일차 사료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철은 흐린 하늘 아래의 지상 구간을 달린다. 이 구간은 오랜만이군. 나의 2학기 주 활동 범위는 서울대 근방과 대치였으니. 이제 시청역으로 가서 슈테르네 사람들을 만난다.

아아, 이 도시란…

서울에 온 지 약 10개월이 다 되어 가는군. 수많은 상경인들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정겨운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지. 그러나 나는 오히려 정반대의 경우에 있다. 나의 친구들, 내가 편하게 느끼는 친구들은 모두 이 도시에 있고, 그런 친구가 될 수 있을 수많은 사람들도 이 도시에 있다.

… 물론 통신기술의 최근 20년간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시공간에 관계없이 가까운 이들과의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도시에서 큰 행복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확실하다.

전철은 신도림역에 진입하며 다시금 어두운 지하세계로 접어들었다. 나는 정신을 산만케 하는 바깥 풍경에서 멀어진 것에 만족감을 느끼며, 꾸벅꾸벅 고개를 까닥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고 있다.

Kann ich eine Geschichte machen?
(내가 하나의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을까?)
Das muss sehr schmerzhaft sein worden!
(그것은 필경 고통스러울 것이다!)
— 2025. 12. 13 —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대학신문»이라던지 «서울대저널»이라던지 하는 그런 학내언론 단체에 소속되어, 진보적 성향의 글을 마음껏 적어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아직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만 있고 실제로 무언가 기사에 가까운 글을 적어본 적은 적은 편이다. 그렇기에 이를 위해서라면 연습을 통해 실력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아, 내 필력, 어디로 간 거니? 글이 예전처럼 잘 써지지 않는다. 이 또한 오래도록 펜을 놓은 탓. 지긋이 펜을 붙들고, 글을 쓰자. 아, 글을 쓰자.
— 2025. 12. 14 — 아니 벌써!

<초연결사회와 허무>

어쩌면 나는 기존의 생각보다, 정이 많은 사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종강 시즌이면, 마지막 강의에서 아무 말 없이 나가기가 왠지 죄송해, 교수님께 괜히 질문 하나쯤 드리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나가곤 한다. 독일어 랩 수업을 맡으신 원어민 선생님께, 독일어로 편지를 적어 전해 드리기도 하였다. 어쩌면, 나는 보통의 이별이라는 것을 원체 어려워하면서, 그 이후에는 그저 담담히 받아들이고, 제 삶 살기에 바빠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초연결사회에서의 허무를 생각한다.

… 나중에 마저 구상해 보자.

Netwerk (네트워크)
Hilf mir! (도와줘!5)

최근 들어 나의 자존감이 급격하게 상승하였음을 느낀다. 니체의 저작 <Ecce Homo>의 목차 제목들처럼, ‘나는 왜 이렇게 멋진가?’,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등의 고양된 느낌을 품고 생활하는 것 같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눈앞에 주어진 대학글쓰기 보고서부터, 샌드페블즈 합주를 위한 기타 연습, 계절학기 학업, 과외 자료 제작까지!

몇 달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진 변화일 테다. 그러나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하나의 이유를 명확하게 꼽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몇 가지 생각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친구들의 지지. ‘사계’에서 만난 친구들을 필두로 한, 친한 친구들의 나에 대한 지지가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준거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2) 선택과 집중에 대한 추구. 내가 잘 못하는 것에 도피적으로 집착하며 스트레스 받고 침체기에 빠지기보단, 잘 하는 것들에 집중하며 성장해 나가자—하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음악 창작’, ‘빼어난 외모’ 등의, —나에게서 결핍되었기에—멋지다고 생각했던 이상향에 집착하는 것에서, ‘글쓰기’, ‘학업’, ‘친구들과의 즐거운 대화’ 등의 내가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고양된 상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지 확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분간은 이러한, 건강한 정신에 감사해하며, 나의 성장을 최고조로 이루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 2025. 12. 15 —

<사진가 비장미 씨의 일일>

별이 떨어진 곳으로…

쇳덩어리로 만든 거대한 뱀의 뱃속에 실려
울렁울렁, 꿀렁꿀렁, 앞으로 나아간다.
별이 떨어졌던 곳으로.

이내 뱀은 제 옆구리를 활짝 열어
사람들을 뱉어내고, 또 빨아들이고.
비장미 씨는 빠져나가는 사람들에 떠밀려, 도착한다.
별이 떨어졌던 곳에.

작일 작성했던 글의 핵심 주제인 ‘높은 계급’에 관해 다시 생각해본다. 높은 계급이란 무엇인가. 결국, 계급이라는 것은 ‘타인의 존재’와 결코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는 주제이다. 따라서 계급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누군가에게 사회란 결국 ‘그가 속해 있는 준거집단’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높은 계급이란 곧, 그 집단에서 자신의 주체적인 사유와 행동을 통해 좋은 방향으로 많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많은 구성원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내가 동경했던 이들을 떠올려본다. 스티브 잡스, 밥 딜런, 커피사유님! 사회의 주류에 굴복하는 대신, 자신의 주체적 사유를, 주관적인 아름다움을, ‘전자기기’의 형태로, ‘음악’의 형태로, ‘글’의 형태로 갈고닦아 내게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몇 달 전까지의 나는, 그들의 외견을 닮고 싶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정연한 외모, 영어 실력, 노래 실력을 닮고 싶었다.

‘잘생긴 사람’, ‘예쁜 사람’들이 나와서 이야기하는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선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인스타그램 릴스에 달린 댓글들, ‘출연자가 예뻐서(잘생겨서) 얼굴 보고 이 물건 사겠다’ 같은 댓글들을 보며, 현대사회는 ‘잘생긴 외모’가 있어야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나는, 영영 ‘높은 계급’에 도달할 수 없을 것으로 단정짓고, 침체기에, 깊은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생각한다. 과연 자신의 외모에 감명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의견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면, 과연 그이는 만족할까? 오히려, 의견 자체가 아니라, 외모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허무와 허탈함을 느끼지 않을까? 또한,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주류에 편승하며 자신의 이득만을 야비하게 추구하는 사람과, 외모는 조금 평범하지만,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고 주류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그로써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는 사람 중, 어느 쪽이 진정으로 ‘계급이 높은’ 사람일까?

결론적으로, 나는 내가 잘 하는 것, 자신이 있는 것, 글쓰기와 말하기, 즉 ‘언어를 가지고 놀기’에 집중하고자 한다. 글쓰기를 추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글읽기를 즐기며, 현대 사회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부둥켜 살며, 나름대로의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말하고 쓰고 또 말하고 쓰려고 한다.

— 2025. 12. 16. 새벽에. —

어쩌면, 내가 사람을 가려 만나는 것은, 화이트리스트보다는 블랙리스트에 가까울 지도 모른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은, ‘철도’, ‘언어학’, ‘생물학’ 등의 특정 취향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는, ‘주류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일 지도 모른다.

확실히 친구와 같이 있을 때는, 글쓰기보다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니면 서로가 작성한 글을 읽고 이야기하거나.)
— 2025. 12. 16. — 분당선 전철에서.

나의 Apple Music 플레이리스트 ‘불독6‘에 새로운 곡을 하나 추가했다. 금일 L누나의 연극을 보러 가서 공연 시작 전 배경음악으로 들었던 <Les Yeux Ouverts7>이다. 특유의 잔잔하면서도 확 꺾이는 멜로디가 확 꽂혀서, 연극이 끝난 이후 연락하여 제목을 물어보아 알게 되었다.

— 그러나 동시에, 소멸위기언어에 대한 글쓰기 보고서를 작성하며, 제국주의 시대의 프랑스와 독일을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가 감미롭다 여기는 그 목소리의 언어를 말하는 침략자들에 의해, 자신들의 언어를 빼앗겼을 지 상상한다.
— 2025. 12. 18. —

  1. 전공선택 과목인 ‘응용생물화학개론’ 마지막 강의를 수강하며 필기한 내용이다.
  2. 수학 귀신
  3. 마지막 독일어 랩 수업 시간, 칠판에 적혀 있던 글귀를 옮긴 것이다.
  4. 12월 18일, 다행히 둘 다 추가합격에서 1지망 대학을 붙었다고 한다. 한 명은 내 후배(?)이다!
  5. 2인칭 단수 명령형이다.
  6. 불어와 독일어 노래들
  7. 눈을 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