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과 ‘사영’
학문은 결국 ‘사영’의 일종이다. 그 자체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의 수많은 현상들과 존재들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언어’의 층위로 사영하는 과정이 바로 학문이다. 자연히 학문은 대상의 본질을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사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차원의 손실과, ‘정사영’이 아니기에 발생하는 수많은 왜곡이 존재한다. 물리학과 같이 우주의 본질을 직시하고자 하는 순수 학문은 가장 정사영에 가까운 사영 변환을 찾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공학과 같은 응용 학문은 적절하게 왜곡된 사영 변환을 찾아내거나, ‘언어의 층위’ 위의 요소를 ‘세계의 층위’로 복원해 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어쩌면 언어학 따위는 같은 공간 안에서 ‘변환’을 거치는 과정일는지도.
ChatGPT의 매개변수 개수가 보여주듯이 인간의 언어의 차원은 결코 그리 낮지 않다. 수만 개의 단어 사이의 관계는 수억에 달하는 문맥 상의 의미를 만들어내고 이들은 수백억, 수천억에 달하는, 아니 셀 수 없을 만큼의 언어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무한에 가까운 우리네 우주의 차원을 이 언어의 차원으로 적절히 사영할 수 있는지가 학문의 문제이기 때문에 학문은 쉼없이 변화하고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 인류가 당면한 문제는 이 학문의 과정을 인간이 아닌 존재, 즉 인공지능이 수행할 수 있는가에 관해서이다. 인공지능은 세계의 수많은 존재와 현상들을 언어의 층위로 사영할 수 있는가? 적절한 초기 명령이 주어진다면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그 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결과물은 과연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일 것인가? 아니면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일 것인가? 언어의 본질은 단어 간의 관계성에 기초하기에, 지시할 수 있는 공통적인 외부의 대상이 존재한다면 결국 인공지능의 언어는 인간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