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이름 붙이기
‘나’가 군대에 있던 시절 재희가 보냈던 절절한 편지의 한 구절(“상실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소중함도 있어. 네가 그래.”)과 ‘K3’라 불러온 공대생이 교통사고로 죽기 전 나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난 한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묘하게 겹쳐진다. 과잉화되어 있는 이 감상적 언어들은 사회에서 좀처럼 의미화되지 못하는 관계의 폭발적인 친밀성을 전달하며, 그 관계를 상실했을 때 애도할 방법을 묻는다. 사회에서 정상이라 말해지는 생애주기 속으로 편입되지 못한 관계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고 끝내 슬픔으로만 남는 것일까.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창작과비평, p. 318 (해설 中)
결혼을 거치는 공인된 관계가 아니라면 미완의 관계로 치부되는 사회 속에서, 온갖 비밀을 공유하고 연대했던 그들은 낭만적 사랑과 결혼의 클리셰에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또다른 사랑의 관계로 남는다.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창작과비평, p. 318 (해설 中)
두 사람의 관계를 ‘연애’라고 규정하는 행위는 그들의 복잡한 서사를 ‘만남, 고백, 연애, 이별’로 규정된 단순한 스테레오타입으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단순히 연애라는 단어로는 규정할 수 없는, 그러나 평범한 연인들보다 수 배로 가깝고 친밀하고 애틋한, 그러한 관계에 관해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나’와 ‘재희’ 사이의 관계는 무어라 이름붙일 수 있을까?
세상에는 참말로 다양한 정체성과 지향성이 있는 만큼, 그들 사이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도 다양해질 필요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