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月 9日 (木)
오늘은 ‘합강장 선출’이라는 작지만 큰 일이 있었기에 3차시 대부분을 빌어 일기를 쓰고자 한다.
어제의 방식대로, 일과를 순서대로 기록해 보겠다.
아침합강
- 샤워를 하고 아침합강에 나와 정보교과서를 읽고, 수학문제를 풀었다.
집합 문제분석을 마저 했다.
아침시간
-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1~4교시
- 가장 기억에 남고 반성할 것은 사회수업이다. 전반적으로 피곤하고, 선생님께서 목소리가 노곤노곤하셔서 눈을 감은 적이 여럿 있었다. 사회과목이라고 졸음에 굴복할 것이 아니라, 스탠딩책상에 가서 수업을 들었어야 했다.
- 화학수업은 좋았다. K 선생님, P 선생님의 화학시간이 연달아 있었다. P 선생님께서는 내가 평소에 좋아하던 과학사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기름방울 실험’이라는 전자의 전하량을 측정하는 실험에 관한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기름방울을 (-)전하로 대전시킨 다음 중력 반대방향으로 전기장을 걸었을 때, 기름방울이 멈추는 지점에서 측정된 전하량이 전자 전하량의 정수배라는 것으로 측정하는 것이 놀라웠다. 또한 실험윤리에 관한 내용도 좀 있었다.
- K 선생님은 조금 무섭긴 했지만 재미있었다. ‘볼타전지’라는 별명(교탁에 이름들 써놓는 곳에 적어놓았던 것이다)으로 인해 주목을 좀 받게 되었다. 화학의 개념들(물질이란 무엇인가, 고체/액체/기체의 정의가 무엇인가)를 물어보셨는데, 내가 생각보다 잘 대답한 것 같으면서도, 개념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바닷물에 들어있는 NaCl의 수와 물분자의 수를 계산하기도 했다.
점심시간
- 점심 기다릴 때 KW, SH1, SW, SH2, SH3, YS와 ‘실전 확률 적용’을 했다. 이번엔 3명이 사주기로 했는데 나하고 건우, 선우가 걸렸다. 여자애들한테 12시 55분까지 오라고 했는데, 1시까지 기다려도 안 오길래 그냥 반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1시 5분쯤 갔었다고 했다.
5교시~8교시
- 동아리 면접(비학술 정규동아리)를 체육관에서 했다. 나는 로켓동아리, 발표동아리 FLASH에 면접을 갔는데, 로켓동아리에서는 말을 좀 잘 한 것 같지만, FLASH에서는 조금 어버버 했다. 친구들과 스터디 좀 하면서 발표능력을 키워나가자.
- 영재학급 2차시험을 쳤다. 정보 시험이었는데 문제가 생각보다 쉬웠다. 첫페이지에 개념문제(알고리즘의 조건, 문제 해결에 관한 내용)을 안 보고 가서 아무거나 말 되는 걸로 찍긴 했지만 말이다. 뭐 안되면 생물 가면 된다. 생물도 실험이 설렌다.
- 합강장 선거를 한다고 해서 연설문을 급히 적었다. 자세한 내용은 뒤에.
저녁시간
- 진자실에 가려고 했는데 그냥 음악실 가서 HS 선배를 만났다.
야간 1차시
- 합강장 선거를 했다. 남은 시간 수학, 물리를 했다.
야간 2차시
- 수학을 했다. 경우의 수 문제 분석을 했다.
합강장 선거 후기
- 오늘의 메인주제다. 이걸 쓰기 위해 소중한 삼차시를 여기 바친다. 어제 반장선거를 하고 나서 선생님께서 ‘합강장’의 존재를 알려 주셨다. 합강을 관리하는 것과 더불어 인원체크의 역할을 맡게 된다고 하였다. 나는 반장선거에서 임팩트를 주기 위해 “개가 되겠습니다”라는 연설을 하고 두 표 받고 떨어졌다. 여기서 ‘임팩트를 준다고 뽑히는 시기는 지나갔다. 진지하게 마음에 울림을 주어야 선택받는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동아리 면접이 끝나고 합강장 후보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즉시 연설문을 쓰기 시작했다. 노트도 마땅하지 않아 영어단어를 외우던 수첩에다 썼다. 사실 처음에는 ‘합강장이 하는 인원체크는 경우의 수 문제를 푸는 것과 유사하다’고 말하려 했지만 너무 장난식의 개그인 것 같아 이를 채택하지는 않았다. 대신 ‘공부’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직무인 만큼 ‘공부’와 관련된 연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청중들(40기 학생들)이 공감할 만한 ‘경남과고에 입학하는 과정’, ‘지난 1달간 있었던 일들’,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등의 키워드를 적어 넣었다. 그리고 이들을 합강장의 역할인 ‘분위기 제고’와 연관시켰다. 그런데 연설문의 마지막 부분인 합강장 공약과 다짐은 아직 적지 못하였었다.
- 그렇게 저녁시간, 추천서를 받고, 저녁을 먹고, 추천서를 제출했다. 7시가 되자 곧바로 소강당에 집합했다. 선생님의 공지를 듣고 합강장 선거 후보자 명단 PPT를 보는데, 남(男)합강장 후보 명단에 내 이름이 없었다. 설마 추천서가 걸러졌나 해서 노심초사 하던 중, 여(女)합강장 후보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1학년 학생들은 전부 웃었고,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남자 쪽으로 옮기시며 ‘미안…’이라고 타이핑 하셨다. 이름순으로 정렬해 기호 6번이었다. 앞의 친구들이 정말 잘 하길래, 노심초사 하며 기다렸다. 많이 긴장되었다.
- 내 차례가 되자 단상으로 올라갔다. 웃는 친구들이 몇몇 있었다. 거기에 화답하듯 ‘일단 여자 아니구요’ 라는 말로 시작했다. 어느 정도 계획과 같이 ‘경남과고 입학 과정’, ‘있었던 일들’, ‘여러분들의 꿈’에 관한 내용으로 연설했다. 이루고자 하는 꿈의 예시로는 L의 ‘유전공학자’, S의 ‘조향사’ 등을 이야기했다.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주는 것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더 좋으리라… 하고 생각했었다.
- 그런데 후반부, 결정적인 문제가 생겼다. 마지막 멘트를 준비하지 않았다. 앞 친구들은 모두 자신의 다짐과, 뽑아달라는 어필을 잘 하였는데 나는 무얼 말할 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몇 초간 말문이 막히다가, 객석에 앉아있던 친구들의 응원을 보고, 나의 솔직함을 드러내기로 했다. 많은 사람(거의 100명) 앞에서 말하는 것이 처음이고, 초등학생, 중학생 때 회장 따위는 해본 적도 없다고 말이다. 마지막은 ‘비록 첫경험이지만 열심히 하겠다’로 끝냈다. 자리로 돌아갔는데, 옆에 앉은 친구가 투표지에 내 이름을 썼다. ‘그래도 연설 잘 했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 P가 ‘너 연설 잘하더라’ 라고 말해 주었다. 내가 단 한번도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 없던 분야였는데, 이 학교에서 몇 번만 더 해보면 선배들처럼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반에 돌아와 공부하던 중, 반장이 ‘합강장 당선자는 나와 J이다’ 라고 말해주었다. 이번이 중학교 1학년 때 부반장에 당선된 일 이후로 처음 투표에서 당선된 것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사실일까. 나는 지금은 공지 같은 걸 하려고 하면 조금 떨리는 면이 있지만 합강장으로서 공지를 몇 번 하다 보면 점차 익숙해질 것이다. 경남과학고에서는 리더십을 키울 기회나 자리가 많다고 하는데 진짜 그런 것 같다. 이번 기회로 통솔하는 능력을 길러나가야겠다.
- 사실 나는 내 주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편이라 남에게도 신뢰를 잘 주지 못하는 것 같다. 따라서 내 주장에 자신감을 가져보도록 하자.
- 논리적으로 남을 설득시키는 것보다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더 탁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된 계기였다.
합강장 선거 연설문 초안
- 안녕하세요, 1학년 3반 전지윤입니다. 저희가 힘든 입시를 이겨내고, 경남과학고에 합격해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게 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돌이켜보면 한 달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브릿지 첫날의 기상곡 <비둘기>부터, 메조포르테의 공연이 기억에 남는 입학식, 오늘 치게 될 영재학급 시험까지. 여러분은 모두 저마다의 꿈을 품고 열심히 달려나가고 있을 것입니다. 유전공학자가 되기 위해, 화학자, 조향사가 되기 위해, 소중한 자신의 꿈들을 향해 매일 밤마다 합강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우주 탐사선 연구원이라는 꿈을 향해 지구과학, 수학, 물리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일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내신 점수를 받고, S대학, K대학과 같이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여 깊은 배움을 얻는 것이, 비록 인생의 전부는 아닐지라 해도 지금의 우리에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의 노력이 물론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저는 공부 분위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저희들은 합강실이 완공되지 않아 교실에서 공부합니다. 여러분도 느끼시겠지만, 책들로 인해 어수선한 교실과, 짝과 이야기하는 소리들로 인해 집중이 잘 된다는 느낌이 드시는 분은 많이 없으실 겁니다. 물론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