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겨울 하늘에 편지를 쓰고파

2025-02-07 Off By rainrose2718

“바람이 불면,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이 떨쳐질까?”

김광석 씨가 불러 잘 알려진 동물원의 노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의 한 소절이다. 정말 바람이 불면 나를 유혹하는 안일한 만족을 떨쳐낼 수 있을까? 책을 접어두고 창문을 열면 잊혀져가던 꿈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려는 듯 눈을 퍼붓는 흐린 겨울 하늘에 편지를 쓰고 싶다.

나는 눈이 싫다.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다. 눈썰매를 타고 눈사람을 만들던 어린 시절에는 마냥 눈이 좋았다. 그러나 눈싸움 대신 눈과 싸워야 하는 지금은 눈이 정말 싫다. 눈은 필연적으로 고립을 불러일으킨다. ‘겨울에 홋카이도 가자’가 ‘사랑한다’와 동치인 것은 ‘함께 고립되고 싶다’는 뜻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고립되었다면 눈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을 테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기 서울이나 창원처럼 천 리 떨어진 곳에서 나름대로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눈이 싫다. 얼마간은 눈을 마음껏 싫어할 것이다.

원체 히치하이커의 기질을 타고났기에 집 밖을 돌아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최근 집 안에 고립되어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쩌면 침체기의 서막을 열 지도 모르는 ‘후회의 무한 루프’가 다시 시작되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일년 전 이러한 상황을 마주하였던 기억이 있고 이를 어떻게 견뎌내는지 알기에, 내가 오늘 하루를 아무 의미없이 보냈다고 단정지으며 너무 깊게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저 흐린 겨울 하늘에 편지를 쓰고싶을 뿐이다. 책을 잠시 접어두고 창문을 열어, 쏟아져 들어오는 차가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싶을 뿐이다. 어쩌면, 그 바람은 나의 내면에서부터 불어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읽고 싶은 책들은 쌓여있고, 시험은 눈앞에 닥쳐있다. 대학 입학을 가르거나 하는 필수적인 시험은 아니다. 그저 대학에서 기초 과목을 수강할지, 고급 과목을 수강할지를 결정하는 시험이다. 일월 한 달 동안은 이 시험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기본적인 실력을 점검하는 시험이므로 본격적으로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곳저곳을 놀러 다니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에 열중하였으며, 그 어느 달보다도 긴긴 한 달을 보냈다.

그러나 이틀 전 시험삼아 풀어본 텝스 기출문제의 점수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분명 예비대학 인트로 특강에서 영문과 교수님은 “기초 영어 커트라인 267점보다 낮은 점수를 받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나는 안일한 만족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점수는 그것의 반토막에 가까운 125점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영어를 그리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설마 기초영어 점수가 나올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보다 한참 아래였던 것이다.

나는 허위의 길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남은 오 일간 반짝 열심히 하면, 기초 영어는 면할 수 있지 않을까? 삼백 점을 넘겨볼 수 있지 않을까? 먼저 풀었던 기출 문제를 복습하기로 했다. 그리 열심히 집중할 수는 없었다. 도서관에서는 영어 복습을 하다가도 금방 집중을 잃고 2층 자료실로 내려가 읽고 싶은 책들을 필사하며 읽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휴대폰을 켜고 의미없는 나무위키 탐방이나 블로그 새로고침을 반복할 뿐이었다. 결국 시험이 하루 남은 지금까지, 오직 ‘듣기’ 부분과 ‘단어’ 부분의 몰랐던 단어 정리만을 완료하였다. 아직 ‘문법’과 ‘읽기’부분은 시작하지도 못 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모르고 있던 부분이 이토록 많다는 것을 또한 깨달아버렸기에 이내 슬퍼지고 말았다. 결국 집에 고립된 오늘, 텝스 공부를 하기보다는 영화 ‘코렐라인’의 영어 리뷰를 보는 것을 택하고 말았다.

내가 ‘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것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특히 자신없는 분야(영어, 수학 등)의 시험을 준비하려고 생각하는 순간,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는 목적이 생기는 순간, 그 끝없이 밀려드는 ‘의무감’의 압박에 의해 도리어 집중을 잃고 ‘딴짓’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자신있는 공부는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광막한 학문의 세계를 ‘탐험’ 하는 공부임을 알고 있다. 새로 발견한 개념을 기존 개념들의 네트워크에 연결하고, 그 네트워크에서 ‘층위’구조를 추출해내어 의미를 부여하는 공부를 즐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론 내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허물어버리고 새로이 개념들을 연결하는 일에 짜릿함을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그렇기에 고등학교에 있을 때부터, 수학, 물리학, 영어보다는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에 자신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나는 최근 전자도 후자와 마찬가지로 네트워크 구조로 설명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직 정복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인 수학, 물리학, 영어도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정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안일한 만족 또는 허위의 길이었을까.

나는 최근 어떤 학문의 세부적인 개념을 받아들이고 네트워크를 잇기보다는, 가장 높은 층위에서 학문이라는 대상을 조망하여 그 본질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모든 것을 관통하려는 핵심적인 열쇠를 발견했다’라고 생각하며 안일하게 만족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주제로 하여 작성하고자 했던 글 <학문 일반론>의 작성도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바람이 불어 그 안일한 만족이 벗겨지고 남은 것은 모든 것의 무의미였다. 각양각색의 물리학, 화학, 수학, 언어, 철학, 정치학, 문학, … 등의 학문들은 가장 높은 층위에서 노드와 엣지의 네트워크로 단순화되었다. 나는 가장 높은 층위로 올라간 끝에 아름다운 학문들의 색을 더이상 감지할 수 없게 되었고, 자연히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산의 정상을 오르는 일은 짜릿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그 아래의 마을과 도시들의 모습을 마치 지도를 보듯이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다지 오래 머무를 수는 없는 법이다. 풍경을 충분히 감상했다면 다시 사람이 사는 곳으로 내려와야 한다.

이제 나는 다시 층위의 산을 내려올 것이다. 산의 정상에 한 번 올라 보았으니, 산기슭의 마을과, 산 밑의 여러 도시들에 들려 볼 것이다. 어떤 마을에서는 오랫동안 머무르며 곳곳을 탐험할 것이다. 지형지물을 익히고, 사람들을 만나고, 때로는 그들 사이의 관계를 추측해볼 것이다. 마음에 드는 곳을 찾으면 평생 정착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 알려진 장소를 모두 탐험한 후에는, 새로운 건축물을 짓거나, 아무도 발견하지 않았던 미지의 지형지물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이상적인 것에서 현실적인 것으로,

…나의 관심을 돌릴 때가 온 듯하다.

난 책을 접어 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음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김창기 곡, 김광석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