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발견 전라북도 편

2025-02-23 Off By rainrose2718

<한국의 발견, 전라북도>, 뿌리깊은나무, 여덟째판(1990), 진주시 ‘소문난서점’에서 구매함.

정치보다는 문학을 한다.

시조나 시가 문학이 세상을 비켜선 사람들의 멋이고 풍류이고 삶의 표백인 것처럼 같은 뿌리에서 세상을 ‘웃을’ 수 있는 풍자 문학도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어떻게 보면 한맺힘과 익살맞음이 맵고 짜게 간을 치고 있는 판소리 사설 그 자체가 이 나라 풍자 문학의 고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바로 그러한 전통 위에서 전라북도는 우리나라 근대 풍자 소설의 거장인 채 만식을 낳았다. 풍자는 높은 곳에서 낮은 데를 내려다보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낮은 데서 높은 곳을 쳐다보는 사람의 것이다. 그러므로 풍자 문학은 바로 야지의 문학이다.
더우기 기본적으로는 문학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야지 문화의 고유한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서울에서는 정치를 하고 시골에서는 문학을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정치는 권력을 추구하고 문학은 인간을 탐구한다. 권력의 본성이 인간을 지배하는 데에 있다면 문학의 본성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에 있다.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가 목적을 위해 수단을 추상하고 과정을 추상하고 그 무엇보다도 인간을 추상해 버리는 데에 견주어 문학은 인간을 구체적인 전체성 속에서 파악하려고 한다. 권력이 인간을 내편, 네편으로 나누고 우군과 적군으로 갈라 볼 때에 문학은 내편과 네편의 인간을 다같이 본다. 그처럼 한쪽말고 두쪽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떨어져서 보아야 된다. 나의 눈과 세계와의 거리가 무릇 본다는 것의 필수 전제이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중앙의 권력에서 멀리 비켜선 전라북도는 그렇기에 이 땅의 권력 정치 속에서 시달리며 살아 가는 사람의 전체 모습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문학의 온상이 된 것이다. 프랑스 시인 뽈 발레리가 “세상을 버린 사람은 세상을 이해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고 말한 것처럼 야지에 사는 전라북도 사람들은 정치보다는 문학을 한다. 신 석상 씨, 오 찬식 씨, 유 현종 씨, 윤 흥길 씨, 이 정환 씨, 최 명희 씨, 최 일남 씨, 최 창학 씨 같은 이 고장 출신의 작가들이 젊음과 재주와 정력을 정치 아닌 문학에 쏟아 이 나라의 문단을 푸지게 하고 있다.

pp. 76-77

구슬픈 가락 속에 숨은 활화산 같은 활력

​ 그러나 중앙의 권력에서 멀리 비켜선 야지의 문화가 언제나 한가롭게 풍월이나 읊고 문학이나 하고 앉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얕은 소견이다. 들에서 일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노상 판소리 사설이나 시와 소설의 글귀에서 그 모든 것을 달램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없는 관찰이다. 떨어져서 본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보되 그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야의 정신의 그러한 비판의 눈이 불을 켤 때 그것은 때때로 사나운 항의와 저항의 정신으로 달아오르기도 한다.
전라북도 땅은 조선 왕조 말에 억눌리고 시달린 백성들의 가장 거센 저항 운동이었던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난 본고장이고, 그것을 지도한 녹두 장군 전 봉준의 고향이며, 그와 함께 낮은 들에서 허리를 굽혀 일만 하던 민중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서 ‘보국 안민’의 들불을 번지게 한 진원지이다. 안으로는 썩어빠진 양반 관료들의 수탈에 항의하고 밖으로는 국권을 넘보는 외국의 침략 세력에 대들어서 일어선 동학 농민 혁명은 마침내 그 두 세력의 연합된 힘에 눌려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동학 농민 혁명 운동은 노상 육자배기와 같은 구슬픈 가락만을 울리고 있는 줄 알았던 이 야지에 실제로는 활화산과 같은 행동의 활력이 감추어져 있음을 역사에 기록해 놓았다.

pp. 77-78

움켜쥐기보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떨어져 있는 사람, 비켜선 사람의 비판적으로 세상을 보는 안목이 입을 벌려 중앙의 지배 권력이야 누구 손아귀에 있건 백성들의 말없는 말을 대신하고 언제나 야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대변할 때에 거기에서 근대적인 언론은 시작된다. 전라도는 그러한 근대적인 언론의 발상지요, 그래서 이 땅의 언론을 일으킨 수많은 선각자들의 고향이 되고 있다.
전라남도가 대한 제국 말년에 기올어져 가는 국운을 바로잡아 보려고 독립 정신과 개화 정신을 북돋운 독립신문의 창간인 서 재필의 고향이라고 한다면, 전라북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에 맞서서 그리고 해방 뒤로는 여러 빛깔의 독재주의 통치의 위협에 맞서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의 언론을 일으킨 동아일보의 발행자인 김 성수의 고향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조국이 광복되자 바로 그 다음날 밤에 해방 뒤의 첫 번째 국문 신문인 건국시보를 펴낸 곳도 전라북도 전주시였다.
언론이 본디 민중의 편에 서서 민중의 소리없는 소리를 대변하는 ‘말길’이라면, 그것을 꿰뚫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백성의 마음 곧 야의 정신이다.
(…중략…)
천석꾼 신 재효나 만석꾼 김 성수나 도무지 움켜쥐는 것을 몰랐다. 꼭 재산을 움켜쥘 줄 모를 뿐만이 아니라 김 성수의 경우에는 팔을 뻗으면 닿는 권력이나 지위도 움켜잡지를 않았다. 신문사를 세우거나 정당을 만들어도 그는 사장 자리, 당수 자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먼저 양보하고 뒷전에 물러서기가 일쑤였다.
공산당과 싸우면서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 데에 가장 큰 밑기둥 노릇을 했으면서도 그는 권력이나 지위를 움켜쥐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김 성수는 부통령의 자리조차 이 승만 박사의 독재 정치에 항변하는 당당한 언론을 펴면서 걷어차고 나와 버렸다. 그래서 그는 정부 수립 뒤에 사십년을 넘긴 한국 현대 역사에 스스로 정부 고위 관직을 자퇴한 하나뿐인 범례를 남겨 놓기도 했다.
아무것도 움켜쥐려 하지 않기에 김 성수가 회사를 꾸미거나 정당을 만들면 사람들은 출신 지방을 따지지 않고 모든 구석에서 구름처럼 그 밑에 모여들었다. 그랬기에 사람을 내편, 네편으로 가르는 정치 권력의 싸움판에서만 늙어 버린 이 승만 대통령조차 자신을 호되게 꾸짖었던 김 성수가 세상을 떴을 때에 서양 부인과 더불어 그 빈소에 문상을 하러 갔었다.
신 재효의 업적이나 김 성수의 사업은 전라북도 사람만의 것일 수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판소리는 온 겨레의 문학이고 음악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고려 대학교나 동아일보도 온 겨레의 교육 기관이고 언론 기관이다.

pp. 78-79

“애비는 종이었다.”

​ 전라북도나 전주나 완주나 이 고장을 대표하는 지명들은 다 가르지 않고 자르지 않는 오롯한 ‘온’을 뜻하는 글자를 꼭 머리에 얹고 있다. 그처럼 전라북도가 낳아 놓은 문화는 온 백성을 위한 문화요, 온 겨레의 문화이다. 정치적인 세도와 경제적인 지배와 사회적인 특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중국 문화와 일본의 식민지 문화와 서양의 산업주의 문화에 심취하고 탐닉해 있을 때에 투박스럽고 얼른 보기엔 촌스럽기까지 하지만 씹을수록 구수하고 구성진 이 나라의 본디 문화를 꽃피운 곳이 전라북도 땅이다. 이 겨레의 마음을 치는 본디 소리, 본디 가락, 본디 말, 본디 글, 본디 멋, 본디 얼을 되찾고 지키고 키운 것이 중앙의 권세에서 멀리 비켜선 이 야지의 문화이다.
(…중략…)
똑똑한 자식들의 아버지는 못나 보이고, 말 잘 하는 아들의 어머니는 말이 서툴고 도시 말이 적은 법이다. 위에 든 이 고장의 그 많은 이름난 자식들을 낳기 위해서는 그의 ‘어머니의 배’로서의 전라북도는 못나야 한다. 풍류, 풍자, 통찰, 비판, 항변의 언어들과 그러한 많은 언어의 사람들을 배출하기 위해서 그들의 모태인 고향 땅은 평소에 말없이 숨죽이고 한다. 그래서 못나고 서툴고 죽어 사는 곳이 전라북도의 야지라고들 한다.
“애비는 종이었다”라는 당돌한 말로 시작되어 오해도 많이 받은 서 정주 씨의 <자화상>은 시인 개인의 자화상이 아니다. 그것은 신 재효나 전 봉준처럼 잘난 자식을 낳을 애비의 땅인 그의 고장을 읊은 <자화상>이다. 못나고 갸냘픈 고장이다. 이 고장 사람들의 기질을 봄바람에 흩날리는 실버들이라 했다 해서 누가 아니라 할까. 그러나 먼저 주위의 하늘부터 노랗게 물들인 뒤에 움이 트는 한국의 춘삼월의 실버들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한국의 봄을, 아니 한국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주 콩나물 맛을 모르면 전주 비빔밥 맛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음식 맛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작고 가난하고 갸냘픈 것이 한국이다. 온 백성들이 다 알고 있는 이 만고의 진리를 중앙의 권세를 좇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나 외래 문물의 눈부신 겉치레에 속이 어두워진 일부 사람들만은 모르고 있다. 그보다도 그들이 더 모르고 있는 것은 작은 것이 나쁜 것이 아니고, 큰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난한 사람이 못난 사람이 아니고 부자가 잘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 몽탕한 것이 똑똑한 것이 아니고 갸냘픈 것이 바보스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만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전라북도의 문화는 그것을 씹어 보면, 이처럼 작고 가난하고 갸냘픈 이 나라 이 겨레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 눈먼 사람에게도 생각의 어두움을 깨우쳐 줄 수 있는 그러한 문화이다.
육자배기의 가락에서나 녹두 장군의 파랑새 노래에서나 야릿야릿한 콩나물 맛에서나 또는 “애비는 종이었다”라는 충격적인 서 정주 씨의 시 구절에서 전라북도의 문화를 씹으면서 우리는 한국다운 것의 본질을 조금씩 배우게 될 것이다.
바람에 날리는 실버들이 어찌 이 고향만의 기질이란 말일까.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용케도 삶을 이어 오고 스스로의 문화를 지켜 온 힘과 슬기가 바람의 날리는 실버들의 질긴 속성과 닮았다고 해서 잘못일까. 그렇게 볼 때 “서러워도 서러워도/고향에 살지” 하고 타이르는 서 정주 씨의 고향은 이미 전라북도의 질마재가 아니다. 그것은 이 땅의 온 백성의 고장인 바로 한국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