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과학고를 여행한 히치하이커의 여행기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컴컴한 새벽, 시끄러운 기상곡이 귓가에 매섭게 울려퍼집니다. 더 자고 싶다고 외치는 몸을 애써 외면하고 벌떡 일어나, 두꺼운 패딩을 걸친 후 잽싸게 기숙사 중앙의 계단을 뛰어 내려갑니다. 오와 열을 맞추어 운동장에 서자 초등학교 체육 시간 이후로 처음 들어보는 국민체조 음악이 쩌렁쩌렁 들려옵니다. 구령대에서 시범을 보이는 회장 선배의 몸동작을 따라서 하나, 둘, 셋, 구호를 외치며 추위로 경직된 몸을 힘차게 움직입니다. 이제는 주변 사람의 뒤통수 말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달려나갑니다. 조금 더 힘을 내어 앞 사람을 앞지르는가 하면, 그보다 더 힘을 냈거나 천성적으로 달리기를 잘 하는 사람에게 앞질러지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달리기를 포기하고 그저 걸어갑니다. 모두가 앞으로 전진하지만 죽을 힘을 다하지 않으면 뒤로 가고 있는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반 바퀴를 다 돌아 돌계단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저마다 아침 합강을 하거나 다시금 기숙사 방에 들어가서 달콤한 잠을 만끽합니다.
경남과학고에 머무르고 있거나 스쳐 지나간 이들은 모두, ‘브릿지 첫날 아침의 기억이 곧 경남과학고 생활 그 자체이다’ 라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외롭고 춥고 어두운 구보 트랙을 힘겹게 달렸습니다. 함께 손을 잡고 달리던 친구가 어느새 손을 놓고 저 멀리 앞으로 달려나갈 수 있다는 불안에 휩싸이는,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리지 않으면 저 멀리 뒤쳐질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이상한 레이스를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헤쳐나갔습니다. 그러다 등 떠밀려 뛰쳐나오듯 졸업한 이후에는 뿔뿔히 흩어져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넓은 도시에서 우연히 서로를 마주친 이들은 그 아침의 기억을 함께 떠올리며 묘한 친밀감과 유대감을 느낄 것입니다.
브릿지 프로그램으로 처음 학교에 왔을 때는 그저 막연한 설렘과 두려움뿐이었습니다. 입학 전 어른들의 충고대로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잘 보여 좋은 인맥과 성적을 얻자’ 라는 지극히 세속적인 목표도 함께였습니다. 초-중학생 시기 학문적 열정은 뛰어났지만 친구 관계는 미숙했던 저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회성이 중요하다’ 라는 통념에 따라 학업보다는 친구 관계를 우선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모든 동기들과 친해지고자 먼저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학교 생활을 이어나갈수록, 입학 전 예상했던 학교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부조리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눈에 밟혔습니다. 자유롭게 학문을 즐기고 토론하는 대신 시험 점수에 연연하며 성적을 잣대로 동기들을 평가하는 문화, 부족한 친구들을 배려하고 챙겨주는 대신 주류 집단에서 배척하고 힐난하는 문화, 아이돌이나 여학생의 외모를 공공연하게 평가하고 웃음거리로 치부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른들의 충고대로 ‘좋은 인맥을 많이 만들기 위해’ 주류 집단에 속하고자 노력하였지만 결국 그들 사이에 도저히 섞여들 수 없었습니다.
저의 특이한 배경 탓에 다른 친구들과 섞여들 수 없었다고 생각했던 저는 제 자신을 자책하고 부끄러워하며 침체기에 빠져들었습니다. 특이한 배경이란, 경남 서북부에 위치한 거창군의 전교생이 백 명 남짓인 기숙형 중학교를 졸업하였고, 교과 학원을 한 번도 다녀보지 않았으며, 시외 버스를 타고 홀로 등하교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는 통학 버스가 다니지 않았기에, 하교를 위해 진성 삼거리의 시내버스 정류장까지 히치하이킹을 해야만 했습니다. 화창한 날에도, 폭염이나 폭우 주의보가 발령된 날에도, 도로변에 나가서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 손을 흔들었습니다. 여러 대의 차를 떠나보낸 끝에 학부모님, 선생님, 체고 조리사님, 동네 주민분께서 저를 기꺼이 목적지까지 태워주셨습니다. 저는 매번 감사함만을 표하며 차에서 내려 터미널로 가는 시내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한창 입시를 준비하던 작년 가을이었습니다. 380번 시내버스에서 창가로 스미는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히치하이킹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었습니다. 혼자서 걸어가기에는 아득한 먼 길을 가기 위해 모르는 사람의 도움을 받는 일, 어쩌면 이는 비단 차를 얻어탈 때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매 순간 항상 하고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정체성을 ‘히치하이커’로 정의하였습니다. 비록 지금 가진 능력은 부족하지만, 가까이 있거나 멀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하여, 결국 도움이 필요한 다른 사람들을 ‘태워줄’ 수 있는 사람, 그런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돌이켜보면 경남과학고에서 보냈던 2년은 결국, 하나의 긴 히치하이킹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를 위해 밤늦게까지 남아 열정적으로 수업과 지도를 해 주신 선생님들 덕에 대학에서도 배우기 어려운 체계적인 수학, 과학 지식들을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깊은 생각을 담은 블로그 글로 제 자신에 대해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신 36기 O 선배와, 저보다 더 힘든 학교 생활을 이어나가면서도 항상 제 곁을 지켜준 친구 H 덕에 침체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묵묵히 응원해 주시며 귀가일마다 따뜻한 밥을 지어 주신 어머니와 밭에서 땀흘려 일하시며 매달 용돈을 쥐어 주신 아버지 덕에 원활한 학교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어둡고 춥고 외로운 길 위에 홀로 서 있던 저는 경남과학고 덕에,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새로운 문 앞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제 대학(大學)이라는 장소에서 새로운 히치하이킹을 막 시작한 참입니다. 막연한 문구에 지나지 않던 ‘자유로운 배움’의 진짜 모습을 온몸으로 마주하고, 더욱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경험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정량적인 점수로 평가할 수 없는 저만의 능력들을 길러나가려 합니다. 새로운 침체기가 갖가지 형태로 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또한 제게 주어진 운명임을 알고 도전과 응전을 거듭하며 저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자 합니다. 어둡고 힘들었던 경남과학고의 아침 구보를 사랑하고 추억의 그림을 그리며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행진하고자 합니다.
마지막으로, 경남과학고에 재학 중이거나 입학 예정인 후배분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주어진 시스템과 주류 문화에서 한 발짝 떨어져나와 ‘당연한 것’을 의심하고, 자기 자신의 역할을 고민해보십시오. 둘. 외모나 성적과 같은 자신만의 잣대로 다른 이들을 재단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동기들은 당신이 그러하듯이 십수 년의 삶 동안 치열하게 살아오며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 온 하나의 존엄한 ‘인간’임을 기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