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서관’의 꿈
대학글쓰기 과제에 필요한 책을 빌리고, 글을 작성하기 위해 방문한 대학도서관에서, 나는 문득 십년 전 초등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는 칸에 적어 내었던 ‘대도서관’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큰 도서관에 가고 싶다’고 적지 않고, 명백히 (얼마 전 작고한) 게임 방송인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그 당시부터 주류 문화에 대한 일종의 반항심과 반발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방송인이냐’ 묻는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는 그 방송인의 존재를 모른 체 하며 사전적 의미만을 의도한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내면적으로 그러한 오해와 질문을 명백히 예상하고 있던 것이었다.
인천 계양초 2학년에 재학중이던 나에게는, 초등학교에 딸려 있는 도서관(별도의 건물이 있을 정도였으니, 초등학교 도서관 치고는 꽤 큰 규모였다.)과 매 주말 부모님과 함께 삼십 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서 방문하던 계양도서관이 도서관의 전부였다. 후자는 몇십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하나, 나는 그 정도의 규모의 도서관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도서관을, 더 넓은 세계를 탐했던 것이다.
거창으로 이사한 이후에도 매주 주말, 친구들과 PC방이나 롤러장, 노래방을 가는 대신, ‘거창 한마음도서관’에 방문하여 하루 온종일 책을 읽었다. 조금 더 자라서 전국 방방곡곡을 홀로 여행할 수 있게 된 이후에는, 방문하는 지역마다 지역의 대표적인 도서관을 들리기 시작했다.
나의 모교가 소재하는 진주시에서는 봄마다 벚꽃이 만개하는 언덕길을 올라가면 있는 ‘연암도서관’이나 시내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부도서관’을 학교 기숙사로 돌아가는 일요일마다 방문했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많이 사는 창원에서는 가장 큰 규모인 창원중앙도서관, 상남도서관을 방문해 대출 카드도 만들었고, 마산에서는 교육청 도서관인 지혜의바다 도서관과 친구 집 근처의 합포도서관에 방문했다. 부산에 즉흥 여행을 떠났을 때는 영주동 산꼭대기에 있는 ‘부산중앙도서관’과,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공공도서관이라는 ‘부산시민도서관’에 방문했다. 작년 이맘때 즈음 서울대 면접을 마치고 포항 가는 버스 시간을 기다리면서 고속터미널 옆의 ‘국립중앙도서관’에 방문했고, 다음날 포스텍 면접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절망하고서는 급히 학문에 관한 철학서를 빌리기 위해 대구에 있는 ‘두류도서관’에 방문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삼백만 권이 넘는 책을 소장한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만년필로 이 글을 끼적대고 있다. 그럼 이 즈음 되어 질문을 던져보자. 나는 정확히 십년 전에 적었던 그 ‘대도서관’의 꿈을 이루었는가?
분명 삼백만 권이 넘는 이 책들은 평생 책만 읽으며 산다고 해도 다 읽을 수 없는 방대한 양임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객관적인 기준에서도, 나는 ‘대도서관’에 방문한다는 그 꿈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도서관의 정의를 다시금 정의해보자. 십년 전의 내가 적어냈던 ‘대도서관’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책이 많은 도서관을 의미하는 것이었는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마주한다는 것에서 오는 황홀경과 설렘이라는 감정의 총체의 표상이었을 것이다.
십년 전의 내가 지금 이 도서관에 방문했다면, 제 키보다 두 배는 큰 책장들이 빼곡히 나열된 광경에 압도되는 동시에, 서가에서 책 한 권을 뽑아들고서 펼쳐보았을 때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했을 것이다. 어려운 전문용어들로 전연 가닿은 적 없는 체계에 대해 서술하는 내용이 매우 생소하고, 그에게는 전혀 무의미한 것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많은 책들을 읽고 공부하다 보면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속에서,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찾기 위해 서가 속으로 깊숙이 들어갔을 것이다.
나는 어쩌면 십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어로 기술된 대부분의 책은 —표면적으로나마—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였지만, 아직도 영어나 독일어 등 외국어로 쓰인 책을 보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빼곡한 로마자 단어들과 중간중간 섞여 있는, 어쩌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르는 단어들에 절망한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도 대도서관을 꿈꾼다. 한국어와 조금의 영어라는 세계의 단편만을 넘어,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튀르키예어, 그리고 이름모를 수많은 언어들로 기술된 책이 놓여있는 대도서관, 바벨의 도서관을 꿈꾼다. 물론 지금은 그 문자들이 내게 어떠한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는 것,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에 절망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고 대도서관을 꿈꾸고 싶다. 무의미한 문자의 연속체를, 나를 눈물짓게 할 수 있는 의미의 거미줄로 바꾸어 놓고 싶다. 계속해서 외국어를 배우고, 안온한 내 세계의 바깥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싶다.
한대수의 가사를 인용하는 것은 이 글에서도 유효할 듯 싶다.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
한대수, <행복의 나라로>, 1절 中
— 2025. 11. 18. 주유소를 닮은 도서관 오 층에서. —
지혜의 바다에 처음 갔을때 압도되었던 기억이 있네요.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높은 책장 앞에서 앞으로 계속 책을 읽어도 저 책들을 다 못 읽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었죠.. 어렴풋 느껴지는 사고의 지평이 넓어지는 감각에 집중하고 싶었는데 의미의 거미줄이라는 표현이 이를 명시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아 인상깊어요.